사소한 일상을 의미 있게 만드는 의식

의사의 서재

사소한 일상을
의미 있게 만드는 의식

메이슨 커리 《리추얼》

(원제: Daily Rituals: How Artists Work)

Writer. 한방내과 조승연 교수

‘리추얼(Ritual)’이란 의식 절차, 항상 규칙적으로 행하는 의식과 같은 일을 의미한다. 이 책은 지난 400년간 가장 위대한 창조자들로 손꼽히는 지성 161명의 리추얼을 소개한다. 사소하고 단조로운 반복으로 보이지만, 이를 통해 창작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극복하고 자신의 시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의미 있는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낸 창조자들의 다양한 삶이 펼쳐진다. 우리는 역사에 이름을 남긴 창조자들이 특별한 일탈을 통해 영감을 얻었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반복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이 책의 저자 메이슨 커리는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으로 매일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오전에는 집중력을 발휘하여 일을 하지만 오후에는 쓸모없는 인간으로 전락한다며, 다른 작가들이 일하는 방법을 찾다 보니 재밌어서 작가들의 작업 습관과 관련된 일화를 모으게 되었다고 한다. 모두 똑같은 24시간을 사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이루는 것일까? 창조적인 소수의 사람들은 특별한 습관을 갖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위대한 창조자들이 언제 잠들고 언제 밥을 먹고, 언제 작업하고 언제 고민했는지와 같은 시시콜콜한 면들을 밝힘으로써, 재밌고 사소한 모습들을 그려냈다. 책을 읽다 보면 그들도 작업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아 노심초사하고 고통, 불안에 시달렸음을알 수 있다. 그래도 모두 어떻게든 자기만의 시간을 내어 작업을 완성했는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삶을 꾸려간 방법은 다양하다.

책에 실린 몇 가지 이야기를 소개해 본다. 스위스 정신의학자 카를 융은 하루 8~9시간 정도 환자를 진료하고 강연과 세미나를 주최하며 일 중독자처럼 살았는데, 휴일에는 전기도 전화도 없고, 장작을 때서 난방하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와 생활하는 소박한 돌집에서 보냈다. 오전에는 집필에 몰두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명상했으며, 오후에는 끝없이 날아드는 편지들에 답장하며 차를 마시고, 푸짐한 저녁 식사를 즐겼다. 그는 휴일에 여기서 지낼 때 자신에게 가장 가까워진다고 하였다.

행동주의 심리학 창시자 스키너는 타이머 소리에 맞춰 글쓰기를 시작하고 멈추었으며, 글을 쓴 시간과 작성한 단어 수를 그래프로 정밀하게 기록함으로써 매일 아침 글을 쓰도록 자신을 조건화시켰다. 하버드 교수직에서 은퇴할 무렵 그의 타이머는 휴일까지 포함해 하루도 빠짐없이 자정, 새벽 1시, 아침 5시, 아침 7시에 울렸다고 한다.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는 매일 오후 2시간 산책했는데, 5분도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 엄격하게 지켰다. 산책 중 멋진 악상이 떠오르면 바로 기록해 두었다가 나중에 피아노로 구체화했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역사학자이자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짧은 ‘겨를’을 활용해 생산적인 활동을 한다고 말했는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화장실에 앉아서, 심지어 수영하는 동안에도 많은 것을 생각하고 구상했다.

우리가 살아있는 이 순간은 모두 리추얼일 수 있다.
대단한 사람이 되지 않더라도, 규칙과 일정한 일상의 힘으로
각자 원하는 가치 있는 삶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미국의 대표적인 현대무용가 트와일라 타프의 의식은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연습복을 입고 택시를 타고 체육관으로 가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 체육관에서 하는 트레이닝이 아니라, 바로 ‘택시’가 의식이라고 하였다. 아침에 일어나 택시에 올라탐으로써 체육관에 갈까 말까 망설이는 마음을 차단하는 것이다.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는 독일의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매일 6시 15분에 일어나 규칙적인 하루를 보내는데, 습관 자체를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해 개발한 일종의 비밀 전략이라 하였다.

《해변의 카프카》, 《1Q84》 등의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대여섯 시간을 쉬지 않고 일하고, 오후에는 달리기나 수영을 하고, 이후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든다. 그는 이런 습관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최면에 걸린 듯 더 심원한 정신 상태에 이른다고 했다.

사람들은 매일 똑같이 주어지는 하루라는 시간을 각자의 방식대로 보낸다. 습관 없이 되는대로 보내는 일도 있을 것이고,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것이 많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 모를 때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독자들이 이 책에서 기가 꺾이지 않고 용기를 얻기 바란다고 쓰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다양한 분야에서 이름을 남긴 창조자들의 일상을 엿보며 우리들의 일상을 어떻게 꾸리면 좋을지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살아있는 이 순간은 모두 리추얼일 수 있다. 대단한 사람이 되지 않더라도, 규칙과 일정한 일상의 힘으로 각자 원하는 가치 있는 삶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 전체를 아우르는 키워드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재미와 의미”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추얼》을 가까이 두고 틈틈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한방내과 조승연 교수

전문진료분야

(뇌신경) 중풍(뇌졸중), 두통, 말초신경질환, 만성통증(신경증), 파킨슨병, 어지럼증, 수면장애, 실신
(한방순환기) 호흡기질환(만성기침, 천식), 흉통(가슴 답답함), 경계·정충(가슴 두근거림), 부종, 혈관질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