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병이 아닌 신경의 병입니다”

테마특집 | 청년 건강 ②

“마음의 병이 아닌

신경의 병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박진경 교수

전문진료분야

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 강박장애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는 2030 환자가 늘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2016년에서 2020년 사이,
우울증으로 치료받은 20대 환자 수는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그럼에도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을 넘는 일이 여전히 편치만은 않다.
정신건강의학과 박진경 교수가 들려주는 우울증과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 다양한 정신건강 질병에 관한 이야기들.

Writer. 이지혜 Photo. 안용길

Q 청년들의 우울증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진료를 위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오는 젊은 환자들이 증가한 것을 체감하시나요?

A 그렇습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청년들은 손에 꼽힐 정도였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환자 수가 전체적으로 늘기도 했고요. 특히 직장 생활을 하는 청년들이 많이 찾아오는 것을 실감하는데요. 직장 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청년들이 부쩍 많아진 것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정신건강의학과를 대하는 개념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아요. 힘들면 찾아오고 약을 먹어야 낫는 병이라는 인식으로 바뀐 것이죠. 기성세대보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히 낮아진 것을 느껴요.

Q 청년 환자들이 늘어난 이유에 코로나19도 있을까요?

A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질병관리청에서 발표한 국민건강통계플러스에 따르면 2018년 이후로 증가하는 젊은 층 중에 코로나19를 기점으로 30대 남자의 우울증 진단율이 유의미하게 증가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삶의 패턴이 많이 바뀐 만큼 터전이나 방식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젊은 층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Q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청년들은 주로 어떤 증상으로 오나요?

A 다양합니다. 일단은 우울하고 불안한 증상이 가장 많습니다. 보건복지부의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발표한 2021년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흥미로운 결과가 있습니다. 불안장애의 1년 유병률, 즉 1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불안장애를 앓고 있느냐를 봤을 때 20대가 가장 많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이 50대, 세 번째로 많은 발병 연령대는 30대입니다. 이것만 봐도 우리 세대 청년들이 불안장애를 굉장히 많이 겪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죠.

결국 우울하고 무기력한 마음,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지
않을 때 그리고 그것이 반복돼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에는 병원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이유로
일상생활이 힘들거나 직업, 학습 영역,
대인 관계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의사를 만나보는 것을 권유합니다.

Q 우울과 불안은 익숙한 단어면서도 막상 본인이 우울한지, 혹은 불안한지 헷갈리는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A 맞습니다. 진단할 때 의사가 구분을 해줘야 하는 개념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우울증,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우울장애를 진단할 때, 그것의 주된 증상 중 하나가 불안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안장애를 진단하는 좀 더 전문적인 진단 기준도 있습니다. 물론 두 개가 서로 같이 있는 경우도 많고 불안장애를 오랫동안 앓다 보면 우울증이 합병증으로 오기도 합니다.

Q 그렇다면 우울장애와 불안장애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나요?

A 사실 그건 환자의 몫이 아닌 의사의 몫입니다. 그것을 본인이 구분할 필요는 전혀 없어요. 다시 말하자면 그만큼 구별하기 애매한 부분이 많아요. 증상만으로 진단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그것이 미치는 환자의 상태나 상황에 따라 판단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 우울감이나 불안감을 느끼는 환자는 그저 병원으로 찾아오시면 됩니다.

Q 그럼 질문을 조금 바꿔서, 어떤 증상이 있을 때 병원을 찾아가야 할까요?

A 극단적으로 말해서 우울하지 않아도 우울장애로 진단받을 수 있어요. 그만큼 우울장애나 불안장애는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구성돼요. 우울감은 정상적인 감정이에요. 하지만 우울감으로 인해 만사가 귀찮고 무기력하거나 혹은 불안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증상이 있다면 의심해 봐야 해요. 이런 감정이 장애를 진단하는 기분 증상에 속합니다. 그런데 우울장애의 진단 기준에서 이런 기분 증상은 3분의 1 정도만 차지해요.

Q 생각보다 적네요. 그럼 나머지 3분의 2는 어떤 증상이 있나요?

A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생각 증상입니다. 우울이나 불안에 잠식돼 ‘나는 왜 살까’, ‘나는 가치가 없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젊은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자괴감, 바로 ‘나 때문이야’하는 생각도 여기에 속해요. 이 생각 증상이 심각해지면 ‘죽는 게 나아’, ‘나만 없어지면 돼’라고까지 확장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신체 증상 또는 행동 증상인데요. 잠이 안 온다든지 중간에 자주 깬다든지 입맛이 뚝 떨어진다든지, 심각하면 몸이 너무 무거워서 움직이기가 힘들다는 무기력한 신체적 증상도 이에 해당합니다.
결국 우울하고 무기력한 마음,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지 않을 때 그리고 그것이 반복돼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에는 병원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이유로 일상생활이 힘들거나 직업, 학습 영역, 대인 관계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의사를 만나보는 것을 권유합니다.

Q 그렇게 병원을 찾게 되면 어떤 치료를 받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A 가장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치료는 약물입니다. 흔히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라고 하면 상담 치료, 좀 더 정확한 용어로는 정신 치료를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병원을 찾으셔서 진단받은 대부분의 환자들은 약물 치료와 함께 정신 치료를 병행하게 됩니다. 가장 빠르고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Q 우울장애나 불안장애 등 정신건강 질환에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A 앞서 말했듯 우울장애란 우울감이란 증상을 일부 가지고 있을 뿐, 사실은 다양한 증상이 복합적으로 모인 병입니다. 불안장애도 마찬가지고요. 흔히 우울장애나 불안장애를 ‘마음의 병’이라고 하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마음, 그러니까 기분 증상은 진단 기준의 3분의 1 정도만 차지하는 거죠. 나머지 생각 증상과 행동 증상이 모여 우울장애나 불안장애 진단을 받는 것입니다. 결국엔 신경계통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저는 이 병을 ‘마음의 병’이 아닌 ‘신경의 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Q 주위에 우울장애나 불안장애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을까요?

A 섣부르게 “너만 힘든 것 아니야”라거나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는 뉘앙스의 말을 하는 것보다 지인의 힘든 상황을 바라봐 주고,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함께 옆에 있어 주시길 바랍니다.

Q 청년들이 평소 정신건강 관리를 할 수 있는 팁을 주신다면요?

A 앞서 말했듯 정신건강 질환은 결코 ‘마음의 병’만이 아닌, 신경계통의 복합적인 질환이지요. 결국 건강한 신체가 필수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하는 부분이죠. 잘 자고, 잘 먹고, 잘 쉬세요. 뭔가 비법을 기대하셨다면 죄송하지만, 너무 당연한 것들이 가장 중요한 것이거든요.

연령별 불안장애 1년 유병률

국립정신건강센터의 2021년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불안장애의 1년 유병률(지난 1년간 해당 정신장애를 경험한 비율)의 연령별 분포도에서 20대의 비율이 4.0%로 가장 높았다. 30대 역시 3.6%로 나타나, 대체로 젊은 층에서 불안장애 유병률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우울증 의사 진단 경험률 변화

국민건강통계플러스에 따르면 코로나19 유행 후 30대 남성에서 우울증 의사 진단 경험률의 유의미한 증가가 나타났다. 전체 경험률은 1.37%인데 반해 30~39세 남성의 경험률은 2.38%로, 특히 무직이나 배우자가 없는 남성의 경우 증가 경향이 뚜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