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을 바라보는 여러 시각들
의사의 서재
임종을 바라보는
여러 시각들
데이비드 재럿 《이만하면 괜찮은 죽음》
(원제: 33 Meditations on Death, 죽음에 대한 33가지 단상)
Writer. 신경과 김상범 교수
대한민국은 2021년 고령인구 비중이 16.6%로 14% 기준선을 넘어 고령사회에 도달했고, 2025년에는 고령인구 비율이 전체의 20.6%를 차지하여 20% 기준을 넘어선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통계청은 예상했다. 보통 65세 이상 인구를 노인으로 정의하는데 2021년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은 83.6년으로 (남자는 80.6살, 여자는 86.6살) 노인이 되고 나서 할아버지는 15년, 할머니는 무려 21년이나 더 삶을 누리는 셈이다.
영국의 국영의료체계 NHS는 전 국민의 의료 서비스를 국가가 책임지는 제도로,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극도로 열악하고 궁핍해진 국민의 건강과 최저생활을 국가가 보장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1946년 시작되었다. 최근 영국의 NHS 제도가 공공의료의 한계를 보이면서 방만한 경영과 비효율로 파산 위기에 이르렀다는 보도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가운데,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이만하면 괜찮은 죽음》은 NHS에서 30년 넘게 노인의학 전담의로 있었던 40년 경력의 내과의사 데이비드 재럿이 현대의학이 괄목할 만하게 이뤄낸 많은 성과 속에서 결국 죽음으로 종결된 가까운 이들의 임종을 가슴 먹먹한 회한과 유머 속에 담담하게 스케치한 책이다.
저자가 그려낸 임종의 삽화들은 소생 가능성이 거의 없는 99세의 노인, 말기환자에게서의 연명치료 또는 심폐소생 시도, 젊은이들의 자살시도 (성공) 후 남은 가족들, 의도치 않은 의료사고로 인한 환자사망, 생활력이 넘치셨던 어머니와 금욕적인 삶에 집착했던 아버지가 치매로 무너져 가는 과정, 검사의 민감도와 특이도를 고려할 때 노인에서는 진단의 불확실성이 커져서 과잉검사와 치료가 이어진다는 점,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된 의료자원으로 중증 환자를 어디까지 치료해야 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애에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또는 아쉽게, 아니면 엉망으로 마무리한 경우들을 하나하나 보여주고 있다. 의사는 환자에게 최선의 길을 안내하고 환자·보호자는 그 의사를 믿고 따라가는 신뢰로운 상황들에서 기술한 내용들이라 일부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낯선 모습으로 보일 수 있으나,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노화, 노쇠, 노인병을 앞서서 경험했던 선배 의사가 나직하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초고령사회가 임박한 우리나라에서 한 번쯤은 새겨들을 조언으로 여겨진다.
“저자는 분명 모든 것에는 마지막 때가 있을 텐데, 그때가 다가오면
스스로 그것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 하고 자문한다.
마지막 식사, 마지막 술자리, 마지막 섹스, 마지막 산책,
가족 간의 마지막 대화, 마지막 스스로 발톱 깎기, 그리고 마지막 숨.”
노화 과정을 객관적으로 서술한 장은 너무 ‘팩트 충만’하여 웃음이 나왔다. “20대 중반부터 뇌의 부피가 매년 0.5%씩 줄어들고남자의 60%는 60대가 되면 성관계를 맺을 만큼 충분한 발기상태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신경과는 95%가 노인의학이다.”
저자는 치매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신 다음, 지나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술에 취하는 일도, 성욕도, 버려질 일도 없는, 마치 심해의 약광층에 있는 것처럼, 빠른 강물 속을 떠다니는 나뭇잎같이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노년일 뿐이라고 자조하면서도, 노인의학 임상부교수로 캐나다 새스커툰에 단기 파견 근무하면서 80대 후반 환자 집으로 방문진료 나갔을 때 환자가 사냥하러 나가서 며칠 집에 안 돌아올 거라는 이웃의 말을 듣고 노년은 이렇게 보내야 하지 않을까라고 얘기한다. 자신이 잘할 수 있고 즐거움을 느끼는 일을 신체적이고 정신적으로 하면서 말이다. 또한 저자는 분명 모든 것에는 마지막 때가 있을 텐데, 그때가 다가오면 스스로 그것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 하고 자문한다. 마지막 식사, 마지막 술자리, 마지막 섹스, 마지막 산책, 가족 간의 마지막 대화, 마지막 스스로 발톱 깎기, 그리고 마지막 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