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꽤 읽는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주로 역사책이나 ‘있어 보이는 책’들을 읽었는데, 가끔은 그저 읽는 척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공보의 시절에는 골프에 빠져 주말마다 강남 교보문고에서 골프 책을 사 모았던 기억도 나는데, 실전보다 이론 공부에 더 열심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재미를 느끼며 읽었던 책들은 역시 소설이었다. 전공의나 공보의 시절, 시간이 남는 주말이면 강남 교보문고에 가서 신간 소설을 찾았고, 주로 서구권의 범죄 소설이나 추리 소설 같은 흥미 위주의 책들을 읽었다. 이제는 의학 서적 외에 책을 사는 일도 드물고, 스마트폰이 대세가 된 이후로 서점에 직접 가는 일은 더더욱 없다. 필요한 책은 그저 온라인으로 산다.
당시에 새로 읽을 만한 추리 소설이 없을 때 가끔 고전 소설을 집어 들기도 했다. 길이가 길거나 등장인물 이름이 복잡한 고전 소설들은 선택에서 탈락했다. 고전 소설에 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초반 열 페이지 정도를 읽고 이해가 안 되거나 지루하면 역시 탈락이므로, 끝까지 모두읽은 고전 소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드문 예외 중 하나가 바로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였다. 이 소설은 짧은 데다가 이상하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금방 읽히게 되었고,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은 몇 안 되는 고전 소설이 되었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스탈린의 공포 정치를 고발한 자전적 소설로 알려져 있다. 솔제니친은 시골 교사로 일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 붉은 군대에 입대해 포병 대위로 복무하던 중,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탈린을 비판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8년간의 강제노동형과 3년의 유형을 받았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암병동》, 《수용소 군도》 같은 작품을 썼으며,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소련 정부의 방해로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못 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분들에게는 수용소에서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이 정말 비루한 음식을 통해 얻는 행복을 바라보길 바란다. 그것을 통해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작은 기쁨들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길 바라며 일독을 권한다.
하지만 이 소설의 진면목은 ‘고발’, ‘저항’, ‘잔혹한 스탈린 체제’, ‘노벨문학상’과 같은 안내와는 거리가 멀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책을 여러 번 읽게 된 첫 번째 계기는 수용소에서 먹는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묘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짧은 소설이지만, 논산 훈련소를 떠올리게 되는 환경에서 수용소 음식을 맛있게 먹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주변 상황, 인물들의 심리, 음식에 대한 묘사가 매우 세밀해서 마치 지금의 유튜브 먹방을 보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세밀한 묘사뿐만 아니라 군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통제된 분위기가 소설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주인공 슈호프를 비롯해 추린, 체자리, 81호 노인과 같은 인물들은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것이 확실한 캐릭터들로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수용소의 하루라는 통제된 환경 속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는 우리 일상과도 닮아 있는데, 제한된 상황 속에서 각자 나름의 방식을 찾아가는 모습은 의외로 우리에게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마치 소련판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도 든다.
이 소설은 8,000원이 넘지 않는 가격으로 20세기 소련의 시베리아 수용소가 어땠는지, 솔제니친이 어떻게 3,600여 일을 버텼는지, 그리고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심지어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그리고 혹시 평소 입맛이 없거나 편식하는 식습관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음식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바쁜 일상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분들에게는 수용소에서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이 정말 비루한 음식을 통해 얻는 행복을 바라보길 바란다. 그것을 통해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작은 기쁨들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길 바라며 일독을 권한다.